당신의 별은 무엇입니까?

지구라는 별 위에, 당신만의 소중하고 빛나는 별을 함께 짓습니다.
별의별건축사사무소는 2014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시작해
단독·협소주택과 한옥, 다가구, 풀빌라 펜션, 카페·상업시설의 설계와 인테리어,
공유주택 기획·운영까지 대안적인 삶을 담는 공간을 만듭니다.







길동 디저트 카페 이웃집마들렌

GILDONG DESSERT CAFE

모퉁이를 내어 주고 사람을 얻은 동네 빵집


오래된 화강석 상가 건물의 모퉁이 1층. 모서리 기둥 양쪽으로 프레임 없는 유리 너머 불 켜진 가게 안이 훤히 보인다. 처마 위 화분에서 자란 마른 풀이 늘어지고, 유리 앞에는 스테인리스 난간과 강아지 물그릇이 놓여 있다

2024년 11월, 서울 강동구 길동의 오래된 상가 건물 모퉁이에 작은 디저트 가게가 문을 열었다.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굽는 부부의 가게, 이웃집마들렌이다. 우리는 이 가게의 유리벽을 건물의 외곽선에서 떼어 내 모퉁이를 사선으로 가로질렀다. 그렇게 생긴 삼각형의 땅은 빌린 가게의 면적이지만, 지붕을 씌운 채 거리에 내주었다. 사람들은 그 지붕 아래로 모퉁이를 질러가고, 그 길의 한쪽 벽은 빵을 굽는 주방이 된다. 개인의 임대면적을 도시에 내주고 그 대가로 사람을 얻는 작은 아케이드다. 그늘 속에 세운 프레임 없는 유리는 햇빛을 되비추지 않아, 가게는 문을 열어 둔 것처럼 보인다. 유리 안쪽에 매단 진열대는 입면이자 간판이고, 안과 밖 사이에서 시선을 부드럽게 거르는 한 겹의 켜다. 간판 대신 처마에 풀을 심어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가게의 얼굴로 삼았다. 도면은 쉽고 정확하게 그려, 건축주가 직접 지었다. 지금 이 가게는 동네 꼬마부터 할머니까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르는 동네 방앗간이 되었고, 길동에서 가장 이름난 과자집이 되었다.

프로젝트  길동 디저트 카페 이웃집마들렌 (GILDONG DESSERT CAFE)
위치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 두 골목이 만나는 모퉁이 상가 1층
용도  디저트 가게 — 마들렌·휘낭시에·오란다·파운드케이크 전문점(음료 포함)
규모  1층 모퉁이 가게 한 칸 (1988년에 지은 지하 1층·지상 4층 상가 건물)
설계 기간  2024년 2월 ~ 5월 (질문지 → 실측 → 계획 → 실시설계 REV1.1 → 화분·쇼케이스 변경)
완공  2024년 11월
시공  건축주 직접 시공 (우리는 실시도면과 현장 먹줄 확인, 변경 검토를 맡음)
주요 재료  프레임 없는 강화유리(10mm), 라왕 합판 천장(안쪽)과 내수합판 처마 밑(바깥쪽), 스테인리스 작업대와 난간, 처마 화분
가게 이름·그림  '이웃집마들렌', 집 모양 캐릭터, 기둥 글판의 프루스트 구절은 건축주가 골랐다
설계  별의별건축사사무소 (손영민, 박소영, 최샘이)
사진  맹토끼, 별의별건축사사무소

설계의 변

길동의 모퉁이
이웃집마들렌은 길동의 오래된 골목, 두 길이 비스듬히 만나는 모퉁이에 있다. 1988년에 지은 화강석 상가 건물의 1층 모서리 칸이다. 위층은 사무실이고, 옆으로는 미용실과 수선집이 이어진다. 주차 금지 입간판이 서 있고, 동네 어르신들이 천천히 지나가는 길이다.

모퉁이는 두 길의 사람이 모두 지나가는, 동네에서 가장 공적인 자리다. 그런데 모퉁이 가게는 대개 그 자리를 가장 사적으로 쓴다. 유리와 샷시를 건물의 외곽선 끝까지 밀어내고, 한 뼘이라도 넓은 매장을 얻는다. 이 가게도 그랬다. 첫 현장 회의 메모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샷시를 철거, 이게 바뀌어야 이 가게가 바뀐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여기는 길이야. 지나가며 자연스레 빵 굽는 모습이 보여."


두 골목이 만나는 모퉁이에 선 4층 화강석 건물. 1층 모서리 가게만 나무색 벽과 투명한 유리로 밝고, 처마 위로 풀이 자라 있다. 오른쪽으로 이웃 미용실의 간판과 차양이 이어진다. 이웃 가게들은 흑백으로 처리했다

질문지에서 시작한 가게
설계는 도면이 아니라 질문지로 시작했다. 「TASTE & IMAGINATION PROJECT」라는 이름을 붙인 두 장짜리 질문지에는 메뉴와 운영, 배달, 마케팅, 브랜딩, 주방 기기와 가구에 관한 질문이 빼곡하다. 그 가운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 공간이 어떤 느낌으로 서 있으면 좋겠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서면 좋겠는지. 가게의 크기나 동선보다 먼저, 가게가 도시에서 맡을 역할을 물은 것이다.

건축주의 답장은 길고 다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불이 켜져 있는 우리 동네 따뜻한 카페 (온기가 느껴지는)
깨끗하고 솔직한 주방과 베이킹 공정
무엇이든 믿고 먹을 수 있는 듬직한 베이커가 있는 카페
— 건축주의 답장(2024-03-06)에서

우리가 그린 공간은 모두 이 세 줄에서 출발한다. 동네에 불을 켜 두는 가게라면, 그 불빛은 길에서 보여야 한다. 솔직한 주방이라면, 주방은 길을 향해야 한다. 믿고 먹을 수 있는 가게라면, 굽는 사람의 손이 보여야 한다. 세 줄은 모두 하나의 건축적 질문으로 모인다. 안을 어떻게 밖에 보여 줄 것인가.

투명성은 유리가 아니라 그늘이 만든다
이 모퉁이는 남쪽을 향해 열려 있다. 가게의 앞면이 하루 종일 햇빛을 받는다는 뜻이다. 원래처럼 건물 외곽선을 따라 유리를 세우면, 유리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다. 밝은 거리의 풍경이 유리 표면에서 그대로 되비치고(정반사), 유리는 거울이 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가게 안이 아니라 자기 모습과 맞은편 건물이다. 손영민 소장은 작업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거리와 도시에 단단한 유리 벽이 … 사람과 가게의 단절.
유리의 투명성이 반사로 인해 더욱 단단한 단절을 만듦.
— 손영민 소장, 작업 메모 「생각.txt」에서

근대 건축은 유리를 투명함의 재료로 믿었다. 콜린 로우와 로버트 슬러츠키는 유리처럼 재료가 주는 투명함을 '문자 그대로의 투명성'이라 부르고, 겹쳐진 공간이 서로를 비춰 읽히는 '현상적 투명성'과 구별했다. 이 모퉁이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문자 그대로의 투명성조차 재료가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리는 빛의 조건에 따라 창이 되기도 하고 거울이 되기도 한다. 남향 모퉁이의 한낮, 외곽선의 유리는 거울이다.

그래서 유리를 외곽선에서 떼어 냈다. 모서리 기둥 안쪽으로 물러나 모퉁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게 하고, 그 위는 건물 2층 바닥이 만드는 처마 밑에 두었다. 유리는 이제 햇빛이 아니라 그늘 속에 선다. 바깥이 안보다 어두워지면 유리는 거울이기를 멈추고, 불 켜진 가게 안을 길에 그대로 비춰 보인다. 같은 유리라도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벽이 되기도 하고 창이 되기도 한다. 투명성은 유리가 아니라 그늘이 만든다.


계획 평면도(기기배치도). 오른쪽 아래 모서리 기둥에서 안쪽으로 물러난 유리벽이 45도 사선으로 가게를 가로지르고, 유리를 따라 진열대가, 안쪽 벽을 따라 오븐·발효기·냉장고가 놓인 주방이 있다. 유리 바깥의 삼각형 땅은 거리 쪽으로 열려 있다


모서리 쪽에서 본 가게 입구. 화강석 문틀 안쪽으로 유리벽이 비스듬히 물러나 있고, 그 앞은 나무 천장을 덮은 작은 바닥이다. 유리 너머로 흰 커튼과 나무 진열대가 보이고, 문틀 위 처마에는 풀과 덩굴이 늘어져 있다

유리에는 프레임을 두지 않았다. 두께 10mm의 강화유리를 천장 합판에 판 홈에 바로 끼워 세웠다. 위에도 아래에도 창틀이 보이지 않으니, 유리의 존재는 가장자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천장의 합판은 유리를 지나 바깥 처마 밑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안쪽은 라왕 합판, 바깥쪽은 같은 결의 내수합판이다. 올려다보면 안과 밖이 한 장의 천장 아래 있다. 유리는 경계라기보다 투명한 막 한 장이 된다.

벤야민은 근대의 유리를 두고 '비밀의 적'이라고 썼다.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는 차갑고 매끈한 재료, 모든 것을 드러내는 재료라는 뜻이다. 우리가 원한 투명함은 그런 차가운 노출이 아니었다. 나무 천장 아래, 그늘 속에 선 유리는 안의 따뜻한 빛을 길로 흘려보낸다. 드러내기보다 초대하는 투명함이다. 그래서 이 가게는 유리로 막힌 가게가 아니라, 문을 활짝 열어 둔 가게처럼 보인다.


가게 밖에서 유리를 정면으로 본 모습. 반사가 거의 없이 유리 너머 흰 커튼과 진열대 위의 구운 과자들이 또렷이 보인다. 가는 금속 선으로 짠 진열 선반의 격자가 유리 앞에 겹쳐 있다


부분상세도. 천장 합판 사이에 홈을 비워 10mm 강화유리를 끼우고, 금속 각재를 30도·45도로 받쳐 보강한 단면. 왼쪽이 내부, 오른쪽이 외부이고, 합판 천장이 유리를 지나 양쪽으로 이어진다

임대면적을 도시에 내주다 — 작은 아케이드
사선은 반사만 없앤 것이 아니다. 유리를 안으로 들이면, 모퉁이에 삼각형의 땅이 남는다. 이 땅은 건축주가 월세를 내고 빌린 가게의 면적이다. 우리는 이 땅을 거리에 내주었다. 천장을 씌우고 조명을 달아, 지나가는 사람이 비를 피하고 모퉁이를 질러갈 수 있는 길로 만들었다.

상가에서 면적은 곧 돈이다. 임대료는 평으로 매겨지고, 가게의 값은 길에 면한 길이로 따진다. 도시는 큰 건물에게만 법으로 공개공지를 내놓게 한다. 누구도 작은 가게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다. 작은 가게에게 몇 평의 바닥은 진열대 하나, 테이블 둘을 더 놓을 수 있는 자리다. 그래도 내주었다. 두 번째 회의 메모 맨 위에 우리가 적어 둔 말이 있다. "내어 주지만 우리 땅이야!" 땅을 내준다고 가게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땅 위로 사람이 지나가고, 지나가는 사람은 유리 너머 빵 굽는 모습을 보고, 그중 누군가는 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선 유리는 개인의 임대면적을 도시에 내주고, 그 대가로 사람을 얻었다.


처마 밑 삼각형 바닥에서 본 모습. 나무 천장과 다운라이트 아래로 유리벽이 비스듬히 이어지고, 유리 앞 나무 진열대 위에 구운 과자가 놓여 있다. 바닥에는 스테인리스 난간과 강아지 물그릇이 있다

이 셈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가 같은 셈법에서 태어났다.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옮겨 적은 1852년의 파리 안내서에 따르면, 아케이드는 건물주들이 힘을 모아 벌인 사업이었다. 자기 땅을 뚫어 사람이 지나가는 길을 내주고, 유리 지붕을 덮은 그 길 양옆에 가게를 열었다. 안내서는 그 통로를 '하나의 도시, 아니 축소된 하나의 세계'라고 불렀다. 이웃집마들렌의 아케이드는 건물주 여럿이 블록을 뚫어 만든 것이 아니라, 작은 가게 하나가 모퉁이 한 귀퉁이를 덜어 내어 만든 것이다.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셈법은 같다. 땅을 내주고 사람의 흐름을 얻는다.

벤야민은 같은 책에서 문지방(Schwelle)을 경계(Grenze)와 엄밀히 구별해야 한다고 적었다. 경계는 선이지만, 문지방은 하나의 지대다. 외곽선을 따라 선 유리는 경계였다. 안과 밖을 한 줄로 갈랐다. 사선으로 물러난 유리와 그 앞의 삼각형 바닥은 문지방이다. 천장은 안의 것이고 바닥은 밖의 것인, 안도 밖도 아닌 두께를 가진 자리다. 알도 반 에이크와 헤르만 헤르츠베르허가 '사이 공간'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자리다.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 이어지는 곳, 지나가는 곳이면서 잠시 머무는 곳이다.

박소영 소장은 이 문지방의 짜임을 「계획방향」에 이렇게 정리했다.

기둥과 벽으로 만들어내는 입구성. 하나의 기둥 - 동선의 변화. 시야보다 낮은 벽 - 빠른 동선.
아케이드 — 상업공간이자 반공공적 공간. 아늑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쇼핑. 내부와 외부의 전이공간.
— 박소영 소장, 「계획방향」(2024-03-04)에서

모서리 기둥은 삼각형 바닥 한가운데 홀로 남아, 모퉁이를 도는 사람의 걸음을 부드럽게 나눈다. 유리 아래 나무 벽은 눈높이보다 낮게 두어, 걷는 사람의 시선이 가게 안 깊숙이 닿게 했다. 벤야민에게 아케이드는 거리도 실내도 아닌 그 사이의 장소였고, 산책자는 그곳에서 거리를 제 집 거실처럼 거닐었다. 이웃집마들렌의 아케이드는 몇 걸음이면 끝나는 짧은 길이지만 하는 일은 같다. 거리를 조금 안으로 끌어들이고, 가게를 조금 밖으로 내보낸다. 그 사이에서 사람은 지나가다 멈추고, 멈췄다가 들어온다. 우리가 바란 것은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 주는 대신, 그 길에 면한 편안한 동네 빵집이 되는 것이었다.


설계 단계의 렌더. 저녁 무렵 모퉁이 가게의 나무 천장과 유리벽 안쪽이 따뜻하게 빛나고, 유리 안쪽에 사람이, 난간 옆 삼각형 바닥에 강아지가 있다

길에 면한 주방
유리 안쪽에는 주방이 있다. 오븐과 발효기, 반죽기, 스테인리스 작업대가 유리를 향해 놓여 있다. 감추어야 할 뒷주방이 아니라 길에 면한 앞주방이다. 건축주가 바란 "깨끗하고 솔직한 주방"을 우리는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른 아침 불을 켜고 반죽을 하는 모습이 이 가게의 가장 좋은 광고다. 계산대 쪽 쇼케이스는 작업대와 비슷한 높이로 낮췄다. 쇼케이스가 높으면 손님이 작업대 쪽까지 들어와 계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에서 보면 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유리 너머로 골목과 맞은편 세탁소, 도배집,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장의 그림처럼 들어온다. 도시를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안전하고 활기찬 거리에는 '거리를 향한 눈'이 있어야 한다고 썼고, 그 눈의 주인으로 동네 가게 주인들을 꼽았다. 그 눈은 감시하는 눈이 아니라, 일하다가 무심히 내다보는 눈이다. 이웃집마들렌의 주방이 그렇다. 가게 주인이 유리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빵 굽는 사람은 작업대에서 자기 일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 모습을 부담 없이 구경하며 걸음을 늦춘다. 들어오라고 붙잡는 진열창이 아니라, 들여다봐도 괜찮은 창이다. 보는 눈과 보이는 손이 서로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때, 거리는 가장 편안해진다.


가게 안에서 사선 유리 너머 골목을 본 모습. 나무 천장과 스테인리스 작업대 너머로 맞은편 세탁소와 도배집 간판,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유리 가득 보인다


주방. 왼쪽 벽을 따라 오븐과 발효기, 냉장고가 서 있고, 긴 스테인리스 작업대가 유리 쪽으로 뻗어 있다. 작업대 끝 유리 너머로 거리가 보인다

매달린 켜 — 진열대가 입면이 되다
사선 유리를 따라 선 진열대는 손영민 소장이 직접 디자인했다. 천장에서 가는 금속 막대를 내려 성긴 격자를 짜고, 그 격자의 어디에든 선반과 쟁반을 걸 수 있게 했다. 빵과 과자는 바닥이나 진열장 안에 놓이는 대신 공중에 매달린다. 무엇을 어디에 걸지는 정해 두지 않았다. 계절과 메뉴에 따라, 가게 주인의 손에 따라 진열대의 모양이 바뀐다.


사선 유리 안쪽에 매단 진열대. 천장에서 내려온 가는 금속 막대들이 격자를 이루고, 비스듬히 기울인 선반 여러 장이 서로 다른 높이에 걸려 있다. 유리 너머로 골목의 건물이 보인다

이 진열대는 하는 일이 많다. 밖에서 보면 가게의 입면이 되고, 간판이 된다. 매달린 쟁반 위의 마들렌이 이 가게가 무엇을 파는지 어떤 글자보다 먼저 말해 준다. 선반에는 메뉴판이나 알림을 올려 둘 수 있고, 가게 주인의 취향이 담긴 물건을 올려 둘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리와 주방 사이에 한 겹의 켜를 만든다.

손영민 소장은 사선 유리를 구상하며 메모에 "레이어가 생김. 깊이감."이라고 적었다. 앞에서 말한 로우와 슬러츠키의 '현상적 투명성'이 바로 이런 것이다. 투명한 유리 한 장은 안과 밖을 한 번에 보여 주지만, 그 뒤에 성긴 격자 한 겹이 서면 눈은 유리와 격자, 매달린 쟁반, 커튼, 주방을 차례로 지나며 깊이를 읽는다. 유리가 문자 그대로의 투명성을 맡는다면, 매달린 진열대는 현상적 투명성을 맡는다.

그러면서 이 켜는 시선의 완충지대가 된다. 우리 옛집의 발이 그랬다. 발은 안에서는 밖을 내다보게 하고, 밖에서는 안을 다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가리개였다. 진열대의 격자와 매달린 쟁반은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한 번 걸러, 작업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길 앞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 지나가는 사람은 부담 없이 들여다보고, 일하는 사람은 부담 없이 일한다. 앞에서 말한 '들여다봐도 괜찮은 창'은 이 한 겹의 가리개 덕분이기도 하다. 발은 가리개이면서 집의 얼굴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대청과 툇마루에 드리운 발이 집의 입면을 바꾸었다. 옛 주막은 장대 끝에 용수를 내걸어 술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무엇을 내거느냐가 곧 간판이었다. 이웃집마들렌의 진열대는 금속으로 짠 발이고, 마들렌을 내건 용수다.

입면, 간판, 진열장, 게시판, 가리개, 그리고 안과 밖을 자연스레 잇는 켜. 하나의 물건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가구가 아니라 건축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선 유리를 따라 매단 진열 선반. 금속 막대에 걸린 선반과 그 아래 쟁반에 포장된 마들렌과 휘낭시에가 줄지어 있고, 유리 너머로 골목의 차와 건물이 보인다

처마의 풀, 계절이 간판이 되다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은 라스베이거스의 길가에서 건물보다 간판이 더 크게 말하는 풍경을 읽었다. 한국의 상가 거리도 다르지 않다. 바로 옆 미용실의 분홍 간판처럼, 간판은 건물의 얼굴을 덮고 글자로 말한다.

우리는 반대로 했다. 이 가게에는 큰 간판이 없다. 대신 처마를 따라 긴 화분을 놓고 풀을 심었다. 첫 회의에서 건물의 빗물받이에 풀을 키워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건축주가 무척 반겼다. 그 생각이 처마 화분이 되었다. 화분의 풀은 계절마다 모습을 바꾼다. 봄에는 새순이 돋고, 여름에는 덩굴이 처마 아래로 늘어지고, 가을에는 마른 풀이 바람에 흔들린다. 우리는 이 변화를 가게의 간판으로 삼았다. 간판은 글자로 말하지만, 처마의 풀은 시간으로 말한다.

알도 반 에이크는 모든 문을 환영으로, 모든 창을 얼굴로 만들라고 했다. 이 가게의 얼굴은 상호가 아니라 계절이다. 한 가게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으면서 동네와 함께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을, 우리는 글씨가 아니라 식물로 보여 주고 싶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은 간판의 글자를 읽지 않아도, 처마의 풀을 보고 계절을 알고, 이 가게가 올해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안다.


처마를 따라 놓인 긴 화분. 마른 풀과 억새가 솟아 있고 덩굴이 처마 아래로 둥글게 늘어진다. 그 아래로 나무 천장과 유리벽이 보인다

잠깐 걸터앉는 자리, 강아지 물그릇
문지방에는 머무를 거리가 있어야 한다. 헤르츠베르허는 집 앞 계단과 문간이 아이들의 의자가 되고 이웃의 사랑방이 되는 장면을 오래 관찰했다. 우리는 유리 앞에 긴 벤치 대신 스테인리스 난간을 하나 세웠다. 오래 머무는 의자가 아니라 잠깐 걸터앉거나 기대는 자리다. 볼라드처럼 길과 가게의 경계를 가볍게 표시하면서, 빵 봉투를 든 사람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난간 끝에는 강아지 물그릇을 두었다. 산책하는 개와 그 주인도 이 모퉁이의 손님이다.


삼각형 바닥 위의 스테인리스 난간과 나무 받침에 올린 강아지 물그릇 두 개. 바닥에는 오래된 화강석과 콘크리트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들렌 한 조각의 기억
가게의 이름과 그림, 그리고 기둥의 글은 건축주가 골랐다. 국어 선생님인 건축주는 처음에 가게 이름을 '카페 마들렌'으로 생각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이 기억을 불러내는 장면 때문이었다. 이름은 '오늘구움', '나의 놀이터'를 거쳐 '이웃집마들렌'이 되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집 그림이 그 이름을 대신한다.

모서리 기둥에는 스테인리스 글판을 붙였다. 한쪽 면에는 집 그림과 가게 이름을, 다른 쪽 면에는 프루스트의 그 구절을 새겼다. "마들렌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으로 시작하는 구절이다. 프루스트의 화자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에서 어린 시절의 마을 콩브레 전체를 되찾는다. 애써 떠올린 기억이 아니라 맛이 불러낸 기억이다. 동네 가게도 그렇게 기억된다. 이 모퉁이를 지나며 자란 아이들에게 이곳은 언젠가 '마들렌 냄새가 나던 모퉁이'로 남을 것이다.

건축주가 고른 프루스트와 우리가 고른 벤야민은 사실 한 책상 위에서 만난 적이 있다. 1920년대 벤야민은 산책자의 글을 쓰던 작가 프란츠 헤셀과 함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독일어로 옮겼다. 기억의 작가와 아케이드의 산책자가 같은 책을 번역했듯, 이 작은 가게에서도 기둥의 문장과 모퉁이의 공간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간은 장소에 머물고, 장소는 시간을 불러낸다.

모퉁이를 지나는 사람은 간판이 아니라 한 편의 문장을 먼저 만난다. 계산대 안내문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나의 놀이터'는 '이웃집 마들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빵 굽는 사람에게 이 가게는 일터이면서 놀이터다.


모서리 화강석 기둥을 감싼 스테인리스 글판. 왼쪽 면에는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구절이, 오른쪽 면에는 굴뚝 달린 집 그림과 '이웃집마들렌' 글씨가 새겨져 있다

쉽고 정확한 도면, 건축주가 지은 가게
이 가게는 건축주가 직접 지었다.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도면을 그렸다. 실시설계는 표지와 평면도 네 장, 천장도 두 장, 부분상세도 두 장, 제작가구 높이 기준도 한 장이다. 평면도는 장마다 담는 내용을 나누어, 기기 배치는 기기 배치만 보면 되게 했다. 모든 치수는 바닥의 한 점(W.P)에서 재도록 했고, 현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치수에는 'VAR'를 붙여 어디를 맞추면 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유리처럼 다른 업체와 맞물리는 부분에는 "반드시 현장 확인 및 유리 시공자와 상부 디테일 확인 후 시공할 것"이라고 적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건축주는 바닥에 먹줄을 놓고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는 도면 위에 현장에서 잰 치수를 빨간 글씨로 적어 주고받으며 사선의 각도와 길이를 맞췄다. 도면은 건축가가 자기 손으로 짓지 않는 건물을 위해 쓰는 편지다. 전문 시공자가 아니어도 읽을 수 있는 편지, 그러면서도 유리 한 장, 선반 하나의 자리가 어긋나지 않는 편지. 이 작업에서 우리가 가장 공들인 것 가운데 하나다.


공사 중인 가게 바닥. 주황색 먹줄이 사선의 유리 자리와 진열대, 작업대의 윤곽을 그리고 있다


평면도의 사선 부분. 도면 치수 옆에 현장에서 잰 치수 3900, 2240, 1290, 890, 860, 680이 빨간 손글씨로 적혀 있고, 유리와 벽이 만나는 각도 135도가 표시되어 있다

이웃집의 빵집
2024년 11월, 완공된 가게를 사진으로 남기던 날, 건축주 부부는 가게 앞 난간에 걸터앉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 뒤로 사선의 유리와 나무 천장, 불 켜진 주방이 보인다.

우리는 이 가게를 조금 작게 만들었다. 대신 길이 조금 넓어졌고, 모퉁이가 조금 환해졌다. 이른 아침 불이 켜지면 그 불빛은 유리를 지나 길까지 닿는다.

지금 이 모퉁이에는 동네 꼬마부터 할머니까지 지나가다 들른다. 가게에서 선물처럼 건네는 과자를 하나씩 받아 먹고 간다. 문지방에서 주고받는 작은 선물은 손님과 가게 사이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관계를 만든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이 가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동네 방앗간이 되어 가고 있다. 가게는 무척 잘되어, 이제 길동에서 가장 이름난 과자집이 되었다. 내준 땅 위로 지나간 사람들이 결국 이 가게의 이웃이 된 셈이다.

도시는 큰 계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모퉁이 하나하나가 모여 동네가 된다. 한 가게가 바닥 몇 평을 내놓았을 때 바뀐 것은 가게 하나가 아니라, 모퉁이 하나와 그 모퉁이를 지나는 사람들의 하루였다. 이웃집마들렌이라는 이름처럼, 이 가게가 오래도록 동네의 이웃집으로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가게 앞 스테인리스 난간에 걸터앉은 건축주 부부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다. 뒤로 프레임 없는 유리 너머 주방과 나무 벽이 보이고, 모서리 기둥에 집 그림 글판이 붙어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길동 디저트 카페 이웃집마들렌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A. 2024년 11월 서울 강동구 길동의 오래된 상가 건물 모퉁이 1층에 문을 연 디저트 가게 인테리어입니다.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굽는 작은 동네 빵집으로, 별의별건축사사무소가 질문지와 계획, 실시설계를 맡았고 건축주가 도면을 보고 직접 시공했습니다.

Q. 왜 유리벽을 사선으로 안쪽에 세웠나요?
A.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남향 모퉁이에서 건물 외곽선을 따라 유리를 세우면 햇빛이 유리에 정면으로 되비쳐 가게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유리를 처마 밑 그늘로 물려 세우면 반사가 줄어 길에서 가게 안이 훤히 보입니다. 또 유리를 물리면서 생긴 모퉁이의 삼각형 땅을 거리에 내주어, 사람들이 지붕 아래로 모퉁이를 질러가는 작은 아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Q. 빌린 가게 면적을 거리에 내주면 손해 아닌가요?
A. 바닥 몇 평은 줄었지만, 그 자리로 사람이 지나갑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유리 너머로 빵 굽는 모습과 진열된 과자를 보고, 그중 누군가는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도 건물주들이 자기 땅에 길을 내주고 그 길에 가게를 열어 사람의 흐름을 얻은 사업이었습니다. 사선 유리는 임대면적을 도시에 내주고 그 대가로 사람을 얻는 장치입니다. 실제로 가게는 무척 잘되어, 지금은 길동에서 가장 이름난 과자집이 되었습니다.

Q.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벤야민은 19세기 파리의 유리 지붕 통로인 아케이드를 거리도 실내도 아닌 사이의 장소로 읽었고, 문지방을 한 줄의 경계가 아니라 두께를 가진 지대로 보았습니다. 이웃집마들렌의 사선 유리 앞 삼각형 바닥이 바로 그런 문지방입니다. 천장은 가게의 것이고 바닥은 길의 것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지나가다 멈추고 멈췄다가 들어옵니다.

Q. 프레임 없는 유리벽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A. 두께 10mm의 강화유리를 천장 합판에 판 홈에 끼워 세우고, 천장 속 금속 각재로 받쳤습니다. 창틀이 보이지 않아 유리의 가장자리가 사라지고, 천장 합판이 유리를 지나 바깥 처마 밑까지 이어져 안과 밖이 하나의 천장 아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가게가 문을 열어 둔 것처럼 보입니다.

Q. 유리 안쪽에 매단 진열대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손영민 소장이 직접 디자인한 진열대로, 천장에서 내린 가는 금속 격자의 어디에든 선반과 쟁반을 걸 수 있습니다. 빵과 과자가 바닥이 아니라 공중에 매달려 가게의 입면과 간판이 되고, 메뉴판이나 알림, 가게 주인의 취향이 담긴 물건을 올려 둘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유리와 주방 사이에 한 겹의 켜를 만들어 깊이감을 주고, 옛집의 발처럼 시선을 적당히 걸러 지나가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합니다.

Q. 처마에 심은 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A. 간판 대신입니다. 처마를 따라 긴 화분을 두고 풀과 덩굴을 심어, 계절마다 바뀌는 식물의 모습을 가게의 얼굴로 삼았습니다. 간판은 글자로 말하지만 처마의 풀은 시간으로 말합니다. 한 가게가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동네와 함께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을 식물로 보여 주려 했습니다.

Q. 문을 연 뒤 이 모퉁이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A. 프레임 없는 유리 덕분에 가게는 문을 열어 둔 것처럼 보이고, 주인이 손님을 빤히 바라보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도 부담 없이 구경합니다. 지금은 동네 꼬마부터 할머니까지 지나가다 들러 가게에서 건네는 과자를 먹고 가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동네 방앗간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Q. 건축주가 직접 시공할 수 있었나요?
A. 네. 실시설계를 평면도, 천장도, 부분상세도, 제작가구 높이 기준도로 나누어 장마다 담는 내용을 줄이고, 모든 치수를 바닥의 기준점에서 재도록 해 전문 시공자가 아니어도 따라 지을 수 있게 했습니다. 공사 중에는 바닥에 놓은 먹줄 사진과 현장 치수를 주고받으며 사선의 각도와 길이를 함께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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