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메트릭 파빌리온
PARAMETRIC PAVILION
구조는 복잡하지만, 구조는 사라진다
검은 바탕 위에 놓인 하얀 도넛 모양의 모형. 물결치는 종이 띠 수백 개가 삼각형 그물처럼 얽혀 고리를 이루고, 띠 사이로 안쪽의 가는 선들이 비친다
파라메트릭 파빌리온은 손영민 소장이 2013년 1월 3주 동안의 Grasshopper 워크숍 'Parametric Thinking and Strategy'에서 시작해, 2월까지 설계하고 손으로 만든 파빌리온이다. 도넛 모양(토러스)의 면을 삼각형 격자로 나누고, 격자의 꼭짓점마다 여섯 갈래로 물결치는 종이 띠를 모아 그물처럼 엮었다. 띠 하나하나는 숫자로 정한 규칙에서 나왔고, 1mm 뮤지엄보드를 레이저로 잘라 번호를 새긴 뒤 꿰매듯 이어 붙였다. 모형의 크기는 가로 1,200mm, 세로 800mm, 높이 400mm다. 자연의 구조에서 출발한 이 파빌리온은 안에 앉은 사람에게 막힘 없이 바깥을 보여 주되, 좌우의 시선은 서서히 지워 저마다 자기만의 풍경을 갖게 한다. 구조는 복잡하지만, 안에서 보면 구조는 사라진다.
프로젝트 파라메트릭 파빌리온 (PARAMETRIC PAVILION)
종류 파빌리온 설계 연구, 디지털 제작 모형
설계·제작 손영민
계기 Grasshopper 워크숍 'Parametric Thinking and Strategy' (2013-01-07 ~ 01-25, 평일 오전)
기간 2013년 1월 ~ 3월 (토러스 정의 01-25 ~ 01-31 → 레이저 커팅 도면 02-05 → 조립 02-07 → 전개도 02-15 → 전시 받침 패널 02-21 ~ 02-24 → 전시 02-25 → 암실 촬영 03-13)
도구 Rhinoceros, Grasshopper
재료·제작 1mm 뮤지엄보드, 레이저 커팅, 손 조립
크기 모형 1,200 × 800 × 400mm (가로 × 세로 × 높이)
전시 2013년 2월, 워크숍 결과 전시
설계의 변
자연이 짓는 방식으로
이 파빌리온은 자연의 구조에서 출발했다. 잠자리 날개의 맥, 뼈 속의 해면질, 바닷속 방산충의 껍데기는 모두 작은 단위가 하나의 규칙으로 되풀이되면서 자리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는다. 생물학자 다아시 톰프슨은 『성장과 형태에 관하여』에서 생물의 모양을 그 모양을 만든 힘과 성장의 기록으로 읽었고, 건축가 프라이 오토는 비눗방울과 거미줄에서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넓게 덮는 구조를 찾았다. 자연은 모양을 먼저 그리지 않는다. 규칙을 정하면 모양은 따라 나온다.
우리가 고른 바탕 모양은 도넛, 수학에서 토러스라 부르는 고리다. 고리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한 바퀴를 돈다. 짚을 둥글게 틀어 물동이 밑에 받치던 똬리처럼, 고리는 가운데를 비워 두고 둘레로 힘을 나눈다. 우리는 이 매끈한 고리의 면 위에 규칙을 얹어, 자연의 구조처럼 단위가 되풀이되되 자리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물을 짜기로 했다.
모양을 그리지 않고, 관계를 정하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모양을 직접 그리는 대신, 모양을 만드는 관계와 그 관계를 움직이는 숫자를 설계하는 방법이다. 건축에서 '파라메트릭'이라는 말을 처음 내세운 사람으로는 1940~60년대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지 모레티가 꼽힌다. 그는 경기장 관람석의 모양을 시야와 거리 같은 변수에서 끌어냈다. 수십 년 뒤 이 말은 컴퓨터가 만든 곡면 건축의 '양식'처럼 쓰이기도 했지만, 이 워크숍이 붙인 이름은 '생각과 전략(Thinking and Strategy)'이었다. 우리가 배운 것도 모양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Grasshopper의 조절판. 'Triangle Size 40', 'Horizontal Lines (Odd) 17', 'Vertical Lines 6', 'Outside Point 24', 'Con Shape (Near the center points) 108', 'Con Shape (Near the middle of the lines) 3.27', 'Joint : Radius 10.0', 'Joint : Thickness 0.5', 'Units : The thickness of the material 0.52' 같은 슬라이더가 위아래로 놓여 있다
이 파빌리온의 모양은 조절판의 숫자 몇 개에 담겨 있다. 고리를 가로지르는 선 17개(홀수), 세로선 6개, 바깥 점 24개, 띠가 꼭짓점 근처에서 휘는 정도 108, 선의 가운데에서 휘는 정도 3.27, 조인트의 반지름 10과 두께 0.5, 재료의 두께. 숫자 하나를 바꾸면 수백 개의 조각이 한꺼번에 다시 그려진다. 우리는 띠 하나하나를 그리지 않았다. 띠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정했을 뿐이다.
세종이 만든 한글이 이렇게 설계되었다.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몇 개의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는 규칙 하나로 ㄱ에서 ㅋ이, ㄴ에서 ㄷ과 ㅌ이 나온다.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그리지 않고, 글자들 사이의 관계를 설계한 것이다. 오백 년도 더 된 이 체계가 우리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다.
삼각형 격자 위에 띠를 짜다
설계는 Grasshopper의 정의 하나로 이어진다. 평면에 삼각형 격자를 깔고, 그 격자를 고리의 면 위로 옮겨 삼각형들로 나눈다. 쓸 삼각형을 고르고, 삼각형의 변을 따라 물결치는 띠의 모양을 만든다. 띠의 바깥 곡선과 안쪽 곡선을 그리고, 서로 겹치는 부분을 잘라 내고, 조인트가 끼워질 구멍의 자리를 낸다. 마지막으로 조각마다 번호를 매기고, 휘어진 띠를 평평하게 펼친다.

Grasshopper 정의 전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2D grid with triangular cells', 'Convert surface to triangle', 'Select triangles', 'Make unit shapes', 'Outside curves', 'Inside curves', 'Cut overlap part', 'Make holes on the units for joint', 'Circle for joints', 'Make joint shapes', 'Mark unit number on a model', 'Unroll unit surfaces' 같은 단계 이름이 붙은 부품 묶음들이 선으로 이어져 있다
삼각형 격자에서는 꼭짓점마다 여섯 개의 변이 모인다. 그래서 이 파빌리온의 마디마다 별 모양 조인트 하나에 여섯 갈래의 띠가 모인다. 띠는 곧게 뻗지 않고 물결친다. 꼭짓점에 가까울수록, 그리고 변의 가운데에서 얼마나 휠지를 조절판의 숫자가 정한다. 곧은 선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격자는 단단하지만 딱딱하다. 띠를 물결치게 하자 격자는 단단함을 잃지 않고 부드러워졌다.

조립 상세 그림. 가운데의 작은 별 모양 조인트를 향해 모양이 서로 다른 띠 여섯 개가 사방에서 모여든다. 띠마다 끝에 조인트에 끼울 홈이 있다
안에서는 밖만 보인다
옛 설계 노트에 우리는 이렇게 적었다. 파빌리온 안의 사람들은 밖을 향해 앉는다. 안에서는 막힘 없이 바깥이 보이고, 앞을 보는 동안 좌우의 풍경은 서서히 사라진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저마다 자기만의 공간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바깥을 지나는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는다.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경계를 설계한 것이다.

고리의 단면 쪽에서 본 모형. 둥근 관처럼 생긴 고리 안쪽이 비어 있고, 물결치는 띠들이 관의 둘레를 이루며 그 사이로 반대편이 보인다
비밀은 띠의 깊이에 있다. 띠는 고리의 면에 수직으로 서 있다. 그래서 정면으로 보면 띠는 얇은 선이 되고 그 사이로 바깥이 열린다. 비스듬히 볼수록 띠의 넓은 면이 겹쳐 시선을 가린다. 벽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띠의 깊이만으로 앞은 열고 옆은 닫았다.
옛사람들은 정자를 지어 사방의 풍경을 빌려 왔다. 담장 너머의 산과 물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을 차경(借景)이라 한다. 이 파빌리온은 한 정자 안에서 자리마다 다른 풍경을 빌려 준다.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사람이 '자신은 드러나지 않으면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자리'를 본능적으로 편안해한다고 보았다. 앞으로는 멀리 트이고 옆으로는 감싸인 자리, 우리가 띠의 깊이로 만들려 한 것이 그런 자리다. 손영민 소장이 2011년부터 신경건축연구회에서 공간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해 온 것도 이 생각과 닿아 있다.
구조는 복잡하지만, 구조는 사라진다
밖에서 보면 이 파빌리온은 수백 개의 띠가 얽힌 복잡한 그물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바깥을 보면, 시선과 나란히 선 띠들은 얇은 선으로 줄어들고 구조는 풍경 뒤로 물러난다. 우리는 이것을 노트에 한 줄로 적었다. 구조는 복잡하지만, 구조는 사라진다.

고리 안쪽에서 바깥을 올려다본 장면. 물결치는 띠들이 삼각형 그물을 이루고, 그물의 마디마다 별 모양 조인트가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띠 사이로 어두운 바깥이 보인다
복잡함을 감추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매끈한 껍질로 덮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는 방향에 따라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 번째를 골랐다. 구조를 숨기지 않고, 구조가 시선을 비켜서게 했다. 빛을 등지고 서면, 이 그물은 하나의 가벼운 윤곽선이 된다.

빛을 등진 모형의 옆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 상자 위에 놓인 고리가 물결치는 가는 윤곽선으로만 보인다

모형을 가까이에서 본 장면. 넓은 띠들이 물결치며 겹치고, 띠마다 'B124', 'B133', 'B141' 같은 번호가 새겨져 있다
번호를 새기고, 꿰매듯 잇다
화면 속 고리를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설계였다. 휘어진 띠를 모두 평평하게 펼쳐 전개도에 늘어놓았다. 띠들은 서로 닮았지만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조각마다 A와 B 같은 글자와 번호를 새기고, 조인트에도 번호를 매겼다. 2월 5일, 띠를 세 묶음으로 나누고 조인트를 따로 모아 레이저 커팅 도면을 만들었다. 1mm 뮤지엄보드가 레이저로 잘려 나왔다.

전개도. 물결치는 띠 모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오른쪽 아래에 별 모양 조인트들이 모여 있다. 조각마다 'Unit A : 33' 같은 번호가 적혀 있다
조각을 잇는 데에도 규칙이 있다. 띠와 띠는 끝을 맞대고, 맞댄 자리에 작은 조각을 홈에 끼워 꿰매듯 잇는다. 마디에서는 별 모양 조인트가 여섯 갈래의 띠를 붙잡는다. 컴퓨터가 정한 번호를 따라, 우리는 몇 주 동안 손으로 조각을 하나씩 찾아 끼웠다.

조립 중에 찍은 사진. 두 띠가 끝을 맞댄 자리에 작은 조각들이 홈에 끼워져 바느질 땀처럼 두 띠를 잇고 있다. 오른쪽 띠에 'A84'가 새겨져 있다
한옥 목수는 다듬은 부재마다 먹으로 번호를 적어 두고, 현장에서 그 번호를 따라 못 하나 없이 짜 맞춘다. 수백 개의 다른 조각을 하나의 질서로 묶는 방법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바뀐 것은 번호를 매기는 손이 컴퓨터로, 톱이 레이저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모형의 아래쪽 가장자리를 가까이 찍은 사진. 물결치는 띠들에 'B49', 'B127' 같은 번호가 새겨져 있고, 띠와 띠가 맞닿은 자리마다 작은 조각들이 바느질 땀처럼 꿰어져 있다
자기 설계도 위에 놓인 모형
2월 말, 모형은 워크숍 결과 전시에 놓였다. 우리는 모형을 받칠 긴 패널을 따로 디자인했다. 패널 위에는 모형이 앉을 자리의 윤곽과 Grasshopper 정의, 조립 상세, 전개도를 그대로 인쇄했다. 모형은 자기를 만든 설계도 위에 앉았다. 보는 사람은 완성된 모양과 그 모양을 낳은 규칙을 한눈에 함께 볼 수 있었다.

전시 패널 위에 놓인 모형. 물결치는 띠들의 그물 아래로 패널에 인쇄된 'PARAMETRIC THINKING AND STRATEGY' 글자가 보인다. 띠에는 'A150', 'A161', 'A88' 같은 번호가 새겨져 있다
모형에서 우리 작업으로
이 파빌리온은 모형으로 남았지만, 여기서 배운 생각은 이듬해 문을 연 별의별건축사사무소의 작업 곳곳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셀프소개팅북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동그라미와 선의 연결망으로 그렸고, 생존박스집 BOUXE에서는 집 한 채를 펼친 전개도로 만들어 누구나 접어 볼 수 있게 했다. 서울혁신파크의 전봇대집에서는 벽 자체가 사람들의 활동이 비쳐 보이는 투명한 경계가 되게 했다. 규칙으로 관계를 설계하고, 그 관계 안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리를 찾게 하는 일. 종이 띠로 엮은 이 작은 고리는 우리 작업의 오래된 연습장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라메트릭 파빌리온은 어떤 작업인가요?
A. 손영민 소장이 2013년 1월 Grasshopper 워크숍 'Parametric Thinking and Strategy'에서 시작해 2월까지 설계하고 직접 만든 파빌리온 모형입니다. 도넛 모양(토러스)의 면을 삼각형 격자로 나누고, 꼭짓점마다 여섯 갈래로 물결치는 종이 띠를 모아 그물처럼 엮었습니다. 1mm 뮤지엄보드를 레이저로 잘라 만든 가로 1,200mm, 세로 800mm, 높이 400mm의 모형으로, 2013년 2월 워크숍 결과 전시에 놓였습니다.
Q.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A. 모양을 직접 그리는 대신, 모양을 만드는 관계와 그 관계를 움직이는 숫자(변수)를 설계하는 방법입니다. 이 파빌리온의 모양은 격자의 선 개수, 띠가 휘는 정도, 조인트의 크기 같은 숫자 몇 개에 담겨 있어서, 숫자 하나를 바꾸면 수백 개의 조각이 한꺼번에 다시 그려집니다. Rhinoceros와 Grasshopper로 설계했습니다.
Q. 안에 앉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이나요?
A. 밖을 향해 앉으면 막힘 없이 바깥이 보이고, 좌우의 풍경은 서서히 사라집니다. 띠들이 고리의 면에 수직으로 서 있어서 정면으로 보면 얇은 선이 되고, 비스듬히 볼수록 넓은 면이 겹쳐 시선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저마다 자기만의 풍경을 갖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방해받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Q. '구조는 사라진다'는 무슨 뜻인가요?
A. 밖에서 보면 수백 개의 띠가 얽힌 복잡한 그물이지만, 안에서 바깥을 보면 시선과 나란히 선 띠들이 얇은 선으로 줄어들어 구조가 풍경 뒤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구조를 껍질로 덮어 숨기지 않고, 보는 방향에 따라 저절로 비켜서게 했습니다.
Q. 조각들은 어떻게 만들고 이었나요?
A. 휘어진 띠를 모두 평평하게 펼쳐 전개도를 만들고, 조각마다 글자와 번호를 새겨 1mm 뮤지엄보드를 레이저로 잘랐습니다. 띠와 띠는 끝을 맞대고 작은 조각을 홈에 끼워 꿰매듯 잇고, 마디에서는 별 모양 조인트가 여섯 갈래의 띠를 붙잡습니다. 번호를 따라 손으로 하나씩 조립했습니다.
Q. 왜 자연의 구조에서 출발했나요?
A. 잠자리 날개의 맥이나 뼈 속의 해면질처럼, 자연의 구조는 작은 단위가 하나의 규칙으로 되풀이되면서 자리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습니다. 적은 재료로 가볍고 튼튼한 구조를 만드는 이 방식이, 규칙에서 모양을 끌어내는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Q. 이 작업은 이후 별의별건축사사무소의 작업과 어떻게 이어지나요?
A. 규칙으로 관계를 설계하는 생각은 셀프소개팅북의 연결망 그래픽, 누구나 접어 볼 수 있는 생존박스집 BOUXE의 전개도, 벽 자체가 투명한 경계가 된 서울혁신파크 전봇대집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저마다 자기 자리를 찾게 한다는 생각도 사무소 작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건축사사무소 — 주택·한옥·다가구 신축, 풀빌라 펜션·상업시설 설계, 상업공간 인테리어, 공유주택 기획·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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