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박스집 BOUXE
SURVIVAL BOX HOUSE-BOUXE
도시 생존의 선배들에게 배운 접는 집
1:10 크기로 접은 생존박스집 모형. 크라프트지 상자가 아코디언처럼 일곱 겹으로 접혀 납작한 꾸러미가 되었고, 비닐 끈과 노끈으로 묶은 손잡이가 위로 솟아 있다
2014년, 서울문화재단 성북예술창작센터의 노숙인 주거 예술 프로젝트 '접는 ZIP 하우스'에 참여해, 골판지 상자 세 개와 테이프로 짓는 최소의 집 'BOUXE(생존박스집)'를 만들었다. 출발점은 관점을 뒤집는 것이었다. 노숙인에게 집 짓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예기치 않게 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할 때 나를 위한 집을 지어 보는 것. 그래서 먼저 거리에서 오래 살아온 '도시 생존의 선배들'에게 박스 쓰는 법을 배웠다. 상자 세 개를 펼쳐 이어 붙이면 몸 하나 누일 집이 되고, 아침이면 아코디언처럼 접혀 손잡이 달린 가방이 된다. 이름도 BOX와 HOUSE를 하나로 접어 만들었다. 워크숍에서는 참가자들과 함께 버려진 상자로 실물 크기 BOUXE를 접었고, 전개도는 누구나 내려받아 접어 볼 수 있게 공개했다. 그해 10월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에게 이 새로운 박스 접는 법을 알려 주며 함께 만들었다. 선배들에게 박스 쓰는 법을 배우고, 박스 접는 법으로 돌려준 셈이다.
프로젝트 생존박스집 BOUXE (SURVIVAL BOX HOUSE)
이름 BOUXE: 박스(BOX)와 집(HOUSE)을 하나로 접은 말. 박스 집을 접어 만든 모양까지 은유한다
계기 서울문화재단 성북예술창작센터 '접는 ZIP 하우스(名 가가호호 ZIP)' 프로젝트 참여
작업 워크숍 발표 「유목적인 삶을 위한 생존의 기술」(2014년 8월, 전시용 9월), 박스 집 BOUXE 디자인과 전개도 키트, 참가자들과 함께 만드는 워크숍, 실물 크기 BOUXE, 전시,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만들기(2014년 10월)
기간 2014년 6월 ~ 10월 (키트 v2.1 2014-09-21, v3.0 2014-10-10, 서울역 광장 축제 2014-10)
크기 실물 기준 키 170~180cm × 폭 60cm × 높이 50cm (노숙에 맞춘 규격), 키트 축척 1:10.7(v2.1)·1:10(v3.0)
재료 골판지 상자 3개, 테이프 (키트는 크라프트 보드 224g)
전시 2014년 9~10월 서울시민청 갤러리
설계 별의별건축사사무소 (손영민, 박소영)
설계의 변
공항의 여행자와 지하도의 노숙인
우리는 이 작업의 해설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유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공항에서 잘만한 장소를 찾아 잠을 청하는 모습은 노숙인과 구별이 어렵다. 자발적인 여행이 아니라 자연재해,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한순간에 노숙인의 삶에 처하게 된다.
— 별의별사무소, 「The art of survival for a nomadic life」(2014)에서
비행기를 놓친 여행자가 공항 의자를 이어 붙여 잠을 청하는 모습과, 지하도에 박스를 깔고 눕는 사람의 모습은 겉으로 거의 같다. 다른 것은 그가 그 자리에 이르게 된 사정뿐이다. 지진이나 홍수, 전쟁이 나면 누구든 하룻밤 사이에 집을 잃는다. 우리는 노숙을 '그들'의 일로 떼어 놓는 대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삶의 한 방식으로 보기로 했다. 노숙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만 지금 그들의 삶에 불편한 변화가 일어났고, 우리보다 조금 더 극한의 생존 문제에 닿아 있으며, 삶에 대한 철학이 조금 다를 뿐이다.
'유목적인 삶'이라는 제목도 거기서 나왔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유목, 노마디즘은 한곳에 뿌리내린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 자리를 찾는 삶이다. 이사가 잦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든 도시인은 이미 반쯤 유목민이다. 도시에서 사는 일 자체가 하나의 생존이라면, 노숙은 그 생존의 가장 날카로운 끝이다.
그들을 위한 집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집
노숙인을 위한 집을 디자인한다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집 있는 사람이 집 없는 사람에게 해결책을 건네는 구도다. 건축가가 '돕는 사람'이 되는 순간, 노숙인은 '도움받는 사람'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작업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노숙자를 위한 집을 만드는 게 아니고, 내가 예기치 않게 노숙을 해야 되는 상황에 닥쳤을 때 나를 위한 집을 지어 보는 것. 이것이 노숙자분들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당신이 노숙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이 되는 것이다.
— 별의별사무소, 작업 메모(2014)에서
주어를 바꾸면 질문이 바뀐다. "노숙인에게 무엇이 필요할까"가 아니라 "내가 오늘 밤 거리에서 자야 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이미 거리에 있었다.
도시 생존의 선배들
건축가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1964년 「건축가 없는 건축」 전시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몸으로 익혀 지은 집들이 건축가의 집보다 오히려 지혜롭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거리에서 박스로 잠자리를 짓는 사람들도 그런 건축가 없는 건축의 장인이다. 우리는 그들을 '도시생존분야의 선배'라고 불렀다. 그리고 책상 앞에서 상상하는 대신, 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했다. 어디서 자는지, 언제 일어나는지, 박스는 어디서 구하는지, 무엇을 가장 조심하는지. 그렇게 들은 생존의 요령을 워크숍 발표 자료에 'SURVIVAL TIPS FROM A MASTER'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맨바닥이 최고라 박스도 필요 없다. 비가 오면 처마 밑으로 가고, 겨울에는 무조건 지하보도 깊숙이 들어간다. 저녁 일고여덟 시에는 사람 없는 쪽에, 자정이 넘으면 오히려 사람 많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반 사이, 밥을 먹으러 가거나 첫 열차가 다니기 전에 일어나 박스를 두고 떠난다. 박스는 고물상 앞이나 교회, 성당, 나눔터에서 어렵지 않게 구한다. 가방은 꼭 끌어안고 자고, 신발은 벗어서 박스 안에 넣어 둔다. 박스 안에서 잘 때는 잘 닫아야 안전하다. 집은 바람을 막도록 밀폐하되 숨 쉴 구멍을 내고, 발이 따뜻해야 잠이 든다. 둘이 함께 자면 박스를 아낄 수 있다. 박스 집 하나를 짓는 데에는 삼십 분쯤 걸린다. 좋은 박스를 구하면 어딘가 숨겨 두었다가 다시 들고 온다. 들고 다니기에는 큰 박스 세 장이 알맞고, 다섯 장은 무겁다. 되도록 얇게 접는 것이 좋다. 일반 박스는 이삼 일, 좋은 박스는 일주일을 쓴다. 그리고 마지막 요령. "친구를 사귀어라. 정보가 생명이다."
이 요령들이 곧 설계 조건이 되었다. 박스는 세 장, 바람을 막되 숨 쉴 틈을 남길 것, 하룻밤 쓰고 다시 접을 수 있을 것, 얇게 접혀 들고 다니기 쉬울 것. 잠자던 박스가 배낭이나 의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선배는 "매우 좋다"고 답했다.

워크숍 발표 자료의 '박스로 집짓기 팁' 쪽. 이동 및 보관(큰 것 기준 3장 정도가 적당, 5장은 무거움, 얇게 접는 것이 좋음, 좋은 박스는 숨겨 두었다 들고 옴)과 내구성(일반 박스는 2~3일, 좋은 박스는 일주일 정도 사용)이 정리되어 있다
박스 + 테이프 + 기술
우리가 고른 재료는 가장 흔한 것이었다. 골판지 상자와 테이프.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가볍고, 싸고, 다루기 쉽다. 발표 자료에는 이 작업의 전략을 세 단어로 적었다. LIGHT, CHEAP, EASY.
흔하다고 약한 재료는 아니다. 골판지는 두 장의 종이 사이에 물결 모양의 골심지를 끼운 구조물이다. 골이 높은 A골은 세로로 누르는 힘에 강하고, 골이 촘촘한 B골은 위에서 누르는 힘에 강하다. 같은 종이라도 골의 방향과 높이에 따라 버티는 힘이 달라진다. 우리는 박스를 납작한 '면'이 아니라 접고, 자르고, 굽히고, 끼워서 공간을 만드는 재료로 다시 보았다.
여기에 더할 것이 기술이었다. 삶과 생존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이다. 사람들은 생존의 정보와 노하우를 인터넷과 책으로 나누고, 서바이벌 키트 같은 전문 도구도 팔린다. 해설문에 우리는 오늘을 "고도 기술의 보편지식 시대"라고 썼다. 우리는 넘치는 정보와, 너무 익숙해서 대단한 줄도 모르는 기술들 사이에서 산다. 종이를 접어 우주에서 태양전지판을 펼치는 시대에, 상자 세 개와 테이프 한 통으로 하룻밤의 집을 짓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해설문은 이렇게 제안했다. "구하기 쉽고 구조적으로 훌륭한 재료인 박스와 테이프에 현대의 기술을 더하여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 고도의 기술을 체득해 온 '도시생존분야' 선배들의 삶을 엿보고, 최소한의 재료로 우리의 생존기술(The art of survival)을 업그레이드해 보자."
세 개의 상자, 하나의 집
이름부터 접어 만들었다. BOX와 HOUSE, 박스와 집이라는 두 단어를 겹쳐 접으면 BOUXE가 된다. 박스로 지은 집이라는 뜻에, 그 집을 접어 만든 모양까지 담은 이름이다. 두 단어가 한 단어 안에 포개지듯, 세 개의 상자가 한 채의 집 안에 포개진다.
BOUXE는 상자 세 개를 펼쳐 테이프로 이어 만든다. 펼친 상자 세 장이 이어지면 키 170~180cm인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긴 판이 되고, 정해진 선을 따라 접으면 지붕과 벽이 일어서 몸을 덮는 작은 터널이 된다. 해 뜨기 전 자리를 비워야 할 때는 같은 선을 따라 아코디언처럼 접는다. 일곱 겹으로 납작하게 접힌 집은 끈 하나로 묶여, 손잡이 달린 가방이 된다. 펼치면 집, 접으면 가방. 들고 다니기 쉬우면서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선배들의 말이 그대로 형태가 되었다.

1:10 키트를 접어 가는 여섯 장면. 접는 선을 그은 크라프트지 한 장이 길게 접히고, 비스듬히 꺾이고, 손에서 상자 모양으로 일어서고, 위가 열린 상자가 되고, 마지막에 손잡이 구멍이 난 꾸러미가 된다

같은 키트의 세 가지 모습. 왼쪽은 지그재그로 비스듬히 쌓인 모습, 가운데는 길게 세워 펼친 모습, 오른쪽은 일곱 겹으로 접혀 끈으로 묶인 가방 모습이다
접는 선은 두 종류다. 안으로 접히는 선과 밖으로 접히는 선. 산과 골이 번갈아 이어지는 접기는 종이접기에서 오래 써 온 원리다. 한 번 길을 들여 두면 펼치고 접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 있다. 칼이나 자 같은 도구가 없어도 되도록, 선을 긋는 데에는 잉크가 안 나오는 볼펜이면 충분하게 했다.
누구나 접어 보는 전개도
이 집의 설계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1:10 크기 안팎의 전개도 키트를 만들어 A형과 B형 두 가지로 공개했다. 한 장의 종이에 해설문과 만드는 방법, 자르는 선, 들어가게 접는 선, 나오게 접는 선, 박스 모양 선을 함께 담았다. 크라프트 보드에 인쇄해 오리고 접으면 손바닥만 한 BOUXE가 된다. 전개도는 아래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은 다섯 단계다.
1. 자르는 선에 맞춰 박스를 자른다.
2. 잘 접힐 수 있도록 안 나오는 볼펜으로 점선 부분을 눌러서 긋는다.
3. 박스의 양 끝을 테이프로 잘 붙인다.
4. 접는 선에 맞춰 잘 접는다.
5. 3개의 박스를 펼쳐서 테이프로 연결한다.
전개도 내려받기: BOUXE TYPE A 전개도 (PDF, 축척 1:10.7) · BOUXE TYPE B 전개도 (PDF, 축척 1:10.7)
손바닥 위의 모형을 접어 본 사람은, 실제 크기의 상자 앞에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키트는 집 한 채를 건네는 대신 집 짓는 법을 건넨다.

BOUXE 키트 A형 전개도. 위쪽에 'SURVIVAL BOX HOUSE BOUXE TYPE A' 제목과 해설문, 만드는 방법이 있고, 아래에 상자 세 개 분량의 전개도가 자르는 선, 들어가게·나오게 접는 선으로 그려져 있다

키트 전개도 위에 세워 둔 1:10 모형. 지그재그로 접힌 상자 탑 꼭대기에 노끈 손잡이가 달려 있고, 바탕에는 BOUXE 전개도와 해설문이 인쇄된 종이가 보인다
함께 접어 보다
BOUXE는 책상 위에서만 접은 집이 아니다. 워크숍에서 우리는 발표에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과 함께 실제 상자를 자르고 접었다. 라면 상자, 시리얼 상자, 과일 상자처럼 흔히 쓰고 버리는 상자들을 모아, 칼로 선을 따라 홈을 내고, 노란 테이프로 이어 붙이고, 산과 골을 따라 접었다. 누군가는 펼친 상자 안에 앉아 칼질을 하고, 누군가는 맨발로 무릎을 꿇고 커다란 골판지 판 위에 접는 선을 그었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였다.

워크숍 참가자가 펼친 상자 안에 앉아 빨간 칼로 접는 선 자리에 홈을 내고 있다. 주변에 여러 상자가 열린 채 놓여 있다

워크숍 바닥에서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마주 앉아, 테이프로 이어 붙인 커다란 골판지 판 위에 펜으로 접는 선을 긋고 있다. 뒤로 색색의 박스 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워크숍 공간. 손영민 소장이 몸을 숙여 상자를 접고, 바닥에는 노란 테이프로 이어 붙인 큰 골판지 판과 자, 테이프가 흩어져 있다. 뒤로 다른 참가자들도 상자를 만들고 있다
다 접힌 실물 크기 BOUXE는 노란 테이프 띠를 두른 두툼한 꾸러미가 되었다. 펼치면 지그재그로 일어서는 긴 집, 끝에서 보면 손잡이 구멍이 난 상자, 접으면 테이프 한 줄로 묶이는 짐. 1:10 모형에서 그려 본 모습이 버려진 상자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다 접은 BOUXE를 세워 들자, 한 아이가 그 꼭대기로 얼굴을 내밀고 웃었다. 생존의 집은 집이 되기 전에 먼저 놀이가 되었다.

워크숍에서 길게 세워 든 실물 크기 BOUXE. 상자 꼭대기 구멍으로 안경 쓴 아이가 얼굴을 내밀고 웃고, 뒤에서 상자를 받친 어른과 옆의 어른도 웃고 있다. 바닥에는 지그재그로 접힌 다른 BOUXE들이 놓여 있다
집 짓는 법을 건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지어 보는 것이다. 손으로 한 번 접어 본 사람은, 언젠가 박스 세 장 앞에 섰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워크숍에서 만든 실물 크기 BOUXE 세 장면. 노란 테이프로 이은 상자들이 지그재그로 펼쳐진 모습, 손잡이 구멍이 난 끝면, 납작하게 접혀 테이프로 묶인 꾸러미

워크숍의 세 장면을 나란히 붙였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접힌 상자 더미를 손보는 모습, 두 사람이 바닥에 앉아 자를 대고 골판지를 자르는 모습, 아이 둘이 어른과 함께 작은 골판지 모형을 접는 모습
전시장에 펼치다
이 작업은 2014년 가을 서울시민청 갤러리의 '접는 ZIP 하우스' 전시에 걸렸다. 전시장을 꾸리던 날, 노란 테이프로 접은 BOUXE는 갤러리 바닥에 터널처럼 펼쳐졌고, 그 옆에는 같은 집이 납작하게 접혀 쌓였다. 하얀 전시장 바닥 위에서 박스는 비로소 쓰레기가 아니라 집으로 보였다. 전시와 함께 안내한 체험 프로그램 '종이박스로 Zip 만들기'의 준비물은 박스테이프 한 개, 종이상자 세 개, 방수 은박지였다.

전시를 꾸리던 날의 서울시민청 갤러리 두 장면. 나무 바닥 위에 골판지 판과 상자들이 흩어져 있고, 오른쪽에 노란 테이프로 이은 BOUXE가 터널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앞에 접힌 BOUXE가 쌓여 있다. 사람들이 바닥에서 상자를 펼치고 나르고 있다
라면 상자와 택배 상자로 접은 BOUXE들이 지그재그로 펼쳐지거나 납작하게 접힌 채 놓였다. 같은 집의 펼친 모습과 접은 모습이 한 바닥에 나란히 있었다.

전시장 바닥의 BOUXE들. 왼쪽 사진에서는 여러 상자를 이어 지그재그로 펼친 BOUXE가 앞에 놓이고, 뒤로 다른 참여 작가들의 박스 작품들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에서는 손잡이 구멍이 난 BOUXE 두 개가 납작하게 접혀 쌓여 있고, 벽을 따라 또 하나의 BOUXE가 아코디언처럼 펼쳐져 있다
서울역 앞에서, 배운 것을 돌려주다
BOUXE는 '유목적인 삶을 위한 생존의 기술'이라는 우리 자신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노숙인을 위한 집이 아니라, 언젠가 거리에서 자야 할지 모르는 나를 위한 집이었다. 그런데 접고 펼쳐 볼수록, 이 작은 집은 지금 거리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는 쪽으로 나아갔다. 선배들에게 배운 요령으로 만든 집이니, 그 집이 선배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해 10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BOUXE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알려 준 것은 새로운 박스 접는 법이었다. 접는 선을 따라 한 번 길을 들여 두면, 박스는 아코디언처럼 접혀 들고 다닐 수 있고, 숨겨 두기도 보관하기도 쉽다. 밤마다 테이프를 붙였다가 아침마다 떼어 내지 않아도 된다. 접힌 면이 겹겹이 맞물려 집이 더 기밀해지니, 바람도 더 잘 막아 준다. 선배들이 일러 준 요령, 얇게 접어 들고 다닐 것, 가까운 곳에 숨겨 둘 것, 바람을 막을 것이 접는 법 하나에 다 들어 있었다.
우리는 선배들에게 박스 쓰는 법을 배웠고, 박스 접는 법으로 돌려주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은 자리였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
종이로 집을 짓는 일은 건축의 오래된 실험이다. 건축가 반 시게루는 1995년 고베 대지진 뒤 종이관으로 이재민의 집을 지었다. 미술가 마이클 라코비츠는 1998년 건물의 배기구에 연결해 부풀리는 노숙인 쉼터 「paraSITE」로 도시가 내버린 것을 생존의 재료로 바꾸었다. BOUXE는 그 실험들 곁에 놓인 아주 작은 집이다. 우리가 바란 것은 대단한 쉼터가 아니라, 상자 세 개를 앞에 두고 "나라면 오늘 밤 어떻게 잘까"를 한 번 상상해 보게 하는 것이었다.
해설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과 우리가 결코 다르지 않은 시대를 '삶'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영위하고 있음을 이해해 보자." 집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은 가장 작은 집 앞에서 가장 또렷해진다. 이 질문은 이듬해 여행가방에서 펼쳐지는 집을 보여 준 전시 「오늘의 집」으로 이어졌다.




자주 묻는 질문
Q. 생존박스집 BOUXE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A. 2014년 서울문화재단 성북예술창작센터의 노숙인 주거 예술 프로젝트 '접는 ZIP 하우스'에 참여해 별의별건축사사무소(손영민, 박소영)가 디자인한 골판지 박스 집입니다. 상자 세 개를 펼쳐 테이프로 이으면 사람 하나가 누울 수 있는 집이 되고, 아코디언처럼 접으면 손잡이 달린 가방이 됩니다. 1:10 전개도 키트로 만들어 누구나 내려받아 접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Q. BOUXE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A. 박스(BOX)와 집(HOUSE)이라는 두 단어를 하나로 접어 만든 이름입니다. 박스로 지은 집이라는 뜻에, 그 집을 접어 만든 모양까지 은유했습니다. 두 단어가 한 단어 안에 포개지듯, 세 개의 상자가 한 채의 집 안에 포개집니다.
Q. 왜 '노숙인을 위한 집'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집'인가요?
A. 집 있는 사람이 집 없는 사람에게 해결책을 건네는 구도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여행 중 공항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과 노숙인은 겉으로 다르지 않고, 재난이나 전쟁이 나면 누구든 하룻밤 사이에 집을 잃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기치 않게 거리에서 자야 한다면"이라고 주어를 바꾸고, 거리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 박스 쓰는 법을 배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Q. 설계 조건은 어떻게 정했나요?
A. 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그분들이 박스로 잠자리를 만들어 온 요령에서 가져왔습니다. 들고 다니기에는 큰 박스 세 장이 알맞고 다섯 장은 무겁다, 얇게 접는 것이 좋다, 좋은 박스는 숨겨 두었다 다시 쓴다, 일반 박스는 이삼 일 쓴다. 그래서 상자 세 개로 짓고, 하룻밤 쓴 뒤 납작하게 접어 가방처럼 들고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크기는 키 170~180cm, 폭 60cm, 높이 50cm로 노숙에 맞췄습니다.
Q. 왜 골판지 박스와 테이프인가요?
A.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가볍고 싸고 다루기 쉬운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골판지는 골의 높이와 방향에 따라 누르는 힘에 버티는 성질이 달라, 접고 자르고 끼우면 생각보다 단단한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박스를 납작한 면이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재료로 다시 본 것입니다.
Q.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나요?
A. 네. 이 페이지의 '전개도 내려받기' 링크에서 A형과 B형 전개도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크라프트 보드(224g)에 인쇄해 자르는 선대로 오리고, 잉크가 안 나오는 볼펜으로 접는 선을 그은 뒤, 양 끝을 테이프로 붙이고 선을 따라 접어 세 장을 이으면 됩니다.
Q. 워크숍에서는 무엇을 했나요?
A. 발표에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과 함께 실제 상자로 BOUXE를 만들었습니다. 라면 상자, 시리얼 상자, 과일 상자처럼 흔히 버려지는 상자를 모아 칼로 선을 따라 홈을 내고, 노란 테이프로 이어 붙이고, 산과 골을 따라 접었습니다. 완성된 실물 크기 BOUXE는 지그재그로 펼쳐지는 집이 되었다가, 납작하게 접혀 테이프 한 줄로 묶이는 꾸러미가 되었습니다.
Q. 노숙인들과 함께 만들기도 했나요?
A. 네. 처음에는 '유목적인 삶을 위한 생존의 기술'이라는 우리 자신의 질문에서 시작했지만, 만들수록 거리에서 지내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2014년 10월에는 서울역 광장 축제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BOUXE를 만들며 새로운 박스 접는 법을 알려 드렸습니다. 이렇게 접으면 들고 다니기 쉽고 보관도 쉬우며, 매번 테이프를 붙였다 떼지 않아도 되고, 집이 더 기밀해져 바람을 잘 막습니다.
Q. 전시는 어디에서 했나요?
A. 2014년 가을 서울시민청 갤러리의 '접는 ZIP 하우스' 전시에 출품했습니다. 라면 상자와 택배 상자로 접은 BOUXE들을 갤러리 바닥에 지그재그로 펼치거나 납작하게 접어 쌓아, 같은 집의 펼친 모습과 접은 모습을 나란히 보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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