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은 무엇입니까?

지구라는 별 위에, 당신만의 소중하고 빛나는 별을 함께 짓습니다.
별의별건축사사무소는 2014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시작해
단독·협소주택과 한옥, 다가구, 풀빌라 펜션, 카페·상업시설의 설계와 인테리어,
공유주택 기획·운영까지 대안적인 삶을 담는 공간을 만듭니다.







더 벙커

THE BUNKER - INDOOR DRIVING RANGE

차는 땅 위에, 친구들은 땅속 광장에


국도변 모서리에서 본 더 벙커. 크림색 벽돌로 쌓은 4층 건물이다. 왼쪽 덩어리에는 층마다 아치 창이 줄지어 있다. 오른쪽 덩어리는 맨 위층 아치 창 아래로 구멍 뚫린 벽돌을 채운 창들이 이어지고, 1층에는 아치가 이어지는 회랑이 있다. 두 덩어리 사이에 솟은 계단탑 꼭대기에는 식빵 모양의 둥근 지붕 셋이 얹혀 있고, 벽에는 'THE BUNKER' 글자가 붙어 있다. 건물 앞 풀밭에는 나무와 바위가 놓여 있다

더 벙커는 경기도 남양주 월산리의 국도변에 설계한 실내 골프 연습장이다.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약 1만 1,500㎡로 우리가 설계한 건물 가운데 가장 크다. 스크린 골프룸과 연습 타석을 서른 개 넘게, 주차를 200대 가까이, 그리고 카페와 빵집을 한 건물에 넣어야 했다. 우리는 위아래를 뒤집었다. 차는 땅 위로 올리고, 운동하는 사람들은 땅속에 두되 건물 한가운데를 크게 비워 땅속까지 하늘이 드는 광장을 만들었다. 경사로를 돌아 오르며 그 광장을 내려다보는 여정과 막다른 곳 없이 도는 길을 두었다. 길이 60m의 크고 진지한 덩어리에는 벽돌로 니트를 입히고, 사각형과 삼각형과 아치 같은 아이 그림의 도형으로 무늬를 떴다. 계단탑 꼭대기에는 유머로 식빵 세 덩이를 얹었다. 우리는 힐링을 '진짜 친구와 추억을 쌓는 일'로 다시 읽고, 이 건물을 '우정의 공간'이라 불렀다. 2021년 8월 건축허가를 받고 실시설계까지 마쳤지만, 사업이 바뀌어 지어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더 벙커 실내 골프 연습장 (THE BUNKER - INDOOR DRIVING RANGE)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월산리, 국도변
용도  운동시설(스크린 골프룸·연습 타석·라운지·사우나) + 근린생활시설(카페·빵집·음식점·상점) + 주차장
규모  지하 2층, 지상 4층과 옥상 주차, 연면적 약 11,500㎡, 주차 200대 가까이
구성  땅 위 1~4층과 옥상은 주차와 카페·상점, 땅속 1~2층은 골프와 라운지. 가운데를 위아래로 뚫은 큰 홀(중정)
구조·외장  철근콘크리트, 벽돌 외장 '니트-벽돌'(아치 창, 아치 회랑, 구멍 뚫린 벽돌, 계단탑 위 식빵 세 덩이)
설계  별의별건축사사무소
기간  2020년 6월 의뢰, 11월 컨셉 '우정의 공간'과 '니트-벽돌', 2021년 8월 건축허가, 10월 실시설계 납품. 2023년 포트폴리오 이미지
상태  건축허가·실시설계 완료, 지어지지 않음

설계의 변

이것도 저것도 — 국도변의 큰 숙제
땅은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국도변에 있었다. 1,200평이 넘는 큰 땅이었고, 요구는 분명했다. 스크린 골프룸과 연습 타석을 서른 개 넘게, 주차는 200대 이상, 그리고 길가에 카페와 가게. 높이는 4층까지로 묶여 있었다. 면적으로 따지면 주차가 운동시설보다 넓었다. 운동 4, 근린생활시설 2.3, 주차 5.4, 공용 0.7. 우리가 받은 것은 골프장이라기보다, 경제성이 먼저인 주차장 건물에 사람이 섞여 들어가야 하는 숙제였다. 그리고 큰 땅의 건물은 길이 길어진다.

우리는 이 건물이 처한 역설을 세 줄로 적었다. 크면서 작아야 한다. 빠른 길에서는 길이 60m의 덩어리로 힘 있게 읽혀야 하지만, 사람의 걸음에서는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 규칙적이면서 변해야 한다. 주차장과 운동시설이 되풀이되는 모듈 구조이지만, 그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덜어야 한다.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어야 한다. 주차장은 바람과 빛이 들어야 하지만, 차는 가려야 한다.

1966년 로버트 벤투리는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보다 '이것도 저것도'를 택하겠다고 썼다. 순수함보다 뒤섞임을, 뻔한 통일보다 어수선한 생기를. 우리 컨셉의 말로는 단일성 대신 복합성이다. 끝없는 반복, 같은 패턴, 줄지은 기둥, 매끈하고 진지한 통일 대신,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다른 질감, 유쾌함과 장난과 개성. 더 벙커는 처음부터 이것도 저것도여야 하는 건물이었다.

힐링은 진짜 친구를 만나는 일
골프 연습장은 흔히 '힐링'을 내건다. 우리는 그 말을 다시 따져 보았다. 예전의 힐링은 치유와 명상, 일상에서 잠시 달아나는 쪽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힐링이라 부르는 것은 오히려 진짜 친구를 만나 노는 일에 가깝다. 쿨하고 피상적인 관계가 쌓이는 피로 속에서, 오래 묵은 우정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정을 셋으로 나눴다. 쓸모 때문에 맺는 우정, 즐거움 때문에 맺는 우정, 그리고 서로의 사람됨을 아끼는 우정. 앞의 둘은 쓸모와 즐거움이 다하면 흩어지지만, 마지막 우정은 시간이 쌓일수록 깊어진다. 동호회나 SNS의 가벼운 모임과 달리, 시간이 쌓인 관계다. 한나 아렌트는 그리스 사람들이 우정의 본질을 대화에서 찾았고, 끊임없는 대화가 시민들을 하나로 묶는다고 여겼다고 썼다. 우리는 그 문장을 컨셉에 옮겨 적었다. 친구를 위한 건물은 곧 대화가 오래 머물 수 있는 건물이다.

우리가 떠올린 장면은 동네 문방구와 등하굣길이었다. 날마다 되풀이되지만 매번 재미있던 길, 친구들끼리 괜히 들러 시간을 보내던 가게. 남녀노소가 끼리끼리 운동하고, 게임하고, 기념일에 모여 우정 사진을 찍는 곳. 벽에는 친구들의 흑백 사진을 걸고, 달마다 그림이 바뀌는 전시 벽을 두자고 적었다. 친구들의 흔적이 남는 벽이다. 아지트 같은 파티 공간의 자유로움과 살롱 같은 은밀함이 함께 있는 곳, 계절이 바뀌듯 작은 변화가 이어져 몇 번을 와도 지루하지 않은 곳. 훗날 "진짜 거기 좋았어"라고 떠올리게 될 곳. 우리는 이 건물을 '우정의 공간', '우정 살롱'이라 불렀다. 친구와의 추억은 결국 어떤 공간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차는 땅 위로, 사람은 땅속으로
경제성으로만 보면 이 건물의 조건은 냉정했다. 좋은 자리는 차가, 나쁜 자리는 사람이 가져가야 했고, 차를 프로그램과 떼어 놓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 조건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위아래를 뒤집었다. 보통은 주차장을 땅속에 넣고 시설을 땅 위에 올린다. 우리는 차를 땅 위로 올리고 골프장을 땅속에 넣었다. 1층에서 4층, 그리고 옥상까지가 주차장이고, 지하 1·2층이 골프와 라운지다.

뒤집으니 많은 것이 풀렸다. 200대 가까운 주차가 한 덩어리로 모여 차가 헤매지 않는다. 땅을 덜 파도 된다. 땅 위 주차장은 용적률에서 빠지니, 4층 높이 안에서 덩어리를 크게 키워 멀리서도 보이는 건물이 된다. 길에 면한 1층은 통째로 카페와 빵집과 가게에 돌려줄 수 있다.

남는 일은 나쁜 자리를 좋은 자리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물 한가운데를 맨 아래층까지 크게 뚫었다. 땅속 층의 라운지와 골프룸이 이 빈 곳을 향해 창을 낸다. 바닥에는 나무를 심고, 위로는 하늘이 열린다. 땅속에 있지만 커다란 바깥에 면해 있어, 땅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하다.


다섯 가지 특징을 그린 컨셉 다이어그램. 1 지상과 지하를 뒤집은 프로그램(주차장 아래에 운동시설), 2 들어 올린 덩어리, 3 가운데가 빈 네모인 큰 홀, 4 끊기지 않고 도는 화살표의 순환, 5 길게 휘감아 오르는 선의 여정, 그리고 'Knit - Brick' 글자


단면도. 왼쪽 땅 높이에서 1층이 살짝 올라앉아 있고, 그 아래 지하 1·2층에 라운지와 사우나, 직원 식당이 있다. 가운데는 지하 2층 바닥의 정원에서 지붕까지 위아래로 뚫린 큰 홀이고, 그 둘레 2~4층과 옥상이 주차장이다. 계단탑 꼭대기에 아치 모양 지붕 셋이 솟아 있고, 오른쪽은 높은 땅에 묻혀 있다

이 건물의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골프장에서 벙커는 모래가 담긴 구덩이다. 일상의 말에서 벙커는 땅속의 은신처다. 폴 비릴리오는 『벙커 고고학』에서 대서양 해안에 남은 콘크리트 벙커들을 전쟁이 남긴 말 없는 덩어리로 읽었다. 숨고 지키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간 건축이다. 더 벙커는 그 뜻을 뒤집는다. 숨으러 들어가는 땅속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러 들어가는 땅속이다. 2021년 봄 '더 벙커'는 골프 연습장의 이름이자 건물의 이름이 되었다.

들어 올리고, 돌아 오르다
국도에서 건물로 드는 길은 속도를 바꾸는 길이다.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달리던 차가 사람의 걸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건물 덩어리를 땅에서 살짝 들어 올리고, 경사로를 따라 오르며 들어서게 했다. 오르막이 길과 건물 사이의 완충이 되고, 길보다 높은 자리가 이 땅의 영역을 만든다. 덩어리가 들리니 지하 1층은 반쯤 땅 위에 나와 덜 지하처럼 느껴지고, 땅을 파는 깊이도 줄어든다.

경사로는 주차장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이 길을 하나의 여정으로 그렸다. 빠른 길에서 건물을 알아보고, 경사로로 들어서면 앞에는 바위와 숲이, 옆으로는 생각지 못한 트인 풍경이 힐끔 보인다.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탈 때처럼 돌아 오를수록 기대가 커지고, 램프 곁으로 큰 홀이 내려다보인다. 홀 안의 사람들과 소리와 빛을 여러 각도에서 지나치며 오르다, 차를 대고 내려오면 로비 뒤로 시원하게 뚫린 큰 공간을 맞는다. 그리고 맨 아래층에서는 같은 홀을 올려다본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보아 주택에서 차가 기둥 사이로 들어와 돌아 나가도록 1층을 그리고, 그 위로 경사로를 따라 걸으며 집을 차례로 겪는 길을 '건축적 산책'이라 불렀다. 우리 옛 건축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오르는 길을 설계했다. 영주 부석사에 오르는 길은 여러 단의 석축과 문을 지나며 조금씩 열리고, 마지막으로 안양루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무량수전 앞마당과 그 너머 소백산 능선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더 벙커의 경사로는 그 산책을 차와 사람이 함께 걷는 길로 늘인 것이다. 주차장의 램프도 산사에 오르는 길처럼 오를 수 있다.


사람이 걷는 경사로. 크림색 벽돌 건물의 모서리를 따라 난간 달린 경사로가 낮게 꺾이며 오르고, 그 앞 풀밭에 커다란 바위 두 개와 가는 나무들이 놓여 있다


건물 안의 주차 경사로. 둥글게 휘어 오르는 검은 길 가운데 섬에 큰 바위와 풀이 놓여 있고, 벽에는 아치 창이 이어지며 그 안을 구멍 뚫린 벽돌이 채운다. 천장 틈으로 빛이 길에 떨어진다


주차층의 경사로 끝. 아치 모양으로 뚫린 벽 너머로 바깥 빛이 들고, 길가의 둥근 섬에 바위와 풀이 놓여 있다

큰 홀, 길을 잃지 않는 큰 집
큰 건물을 미로처럼 오르내리면 길을 잃기 쉽다. 큰 쇼핑몰에서 몇 번씩 같은 자리로 돌아오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케빈 린치는 『도시의 이미지』에서 사람이 길을 찾는 단서를 길, 경계, 지역, 결절점, 랜드마크로 나누고, 머릿속에 또렷한 그림이 그려지는 도시를 '읽기 쉬운' 도시라 불렀다. 우리는 큰 건물 안에 그 결절점을 하나 크게 두었다. 건물 한가운데에 크게 빈 홀을 두고, 모든 길과 프로그램이 그 홀을 둘러 돌게 했다. 어디에 있든 홀이 보이고, 홀을 보면 지금 내가 어디쯤인지,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안다. 우리는 컨셉에 이렇게 적었다. "아는 길은 가깝고 모르는 길은 멀다." 갈 곳이 보이면 큰 건물도 가깝다.

ㅁ자로 지은 한옥에서는 모든 방이 안마당을 향한다. 방에서 나오면 마당이고, 마당에 서면 집 전체가 한눈에 든다. 더 벙커의 큰 홀은 그 안마당을 땅속 두 층에서 지붕까지 세로로 세운 것이다. 땅속의 정원에서 올려다보면 층층의 주차장 너머로 하늘이 보이고,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땅속의 정원이 보인다.


하늘에서 본 더 벙커. 네모난 벽돌 건물의 옥상이 주차장이고, 가운데에 네모난 큰 홀이 맨 아래층까지 깊게 뚫려 있다. 한쪽 끝에 식빵 모양 지붕을 인 계단탑이 서 있다


2~4층 평면. 가운데 네모난 큰 홀을 주차장이 한 바퀴 둘러싸고, 한쪽에 홀과 상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다

막다른 곳이 없는 집
우리는 이 건물에 막다른 곳을 두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 계속 갈 수 있고, 되돌아 나오는 일이 없다. 길이 고리처럼 돌기 때문에 같은 공간을 여러 각도에서 겪게 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지나친다. 시선이 오가고, 우연히 마주치고, 그렇게 인연이 생긴다. 우리는 이 고리를 '사건 발생 장치'라고 불렀다. 베르나르 추미는 사건 없는 건축은 없다고 했다. 공간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과 사건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구석에 고립된 곳이 없으니, 어느 방이든 고르게 좋은 자리가 된다.

노래방처럼 방, 방, 방, 방이 늘어선 건물과, 딱히 기능은 없어도 둘러보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는 건물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윌리엄 H. 화이트는 뉴욕의 광장들을 관찰한 끝에, 사람을 가장 끌어들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도 컨셉에 같은 말을 적었다. 사람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카페와 골프를 이었다. 아직 골프에는 문턱이 있지만, 또래 친구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 문턱은 낮아진다. 카페 손님도 재미로 퍼팅을 해 볼 수 있다. 커피 한 잔으로 이 공간 전체를 누릴 수 있다면, 우리라도 기꺼이 가겠다.

1층 카페는 길 쪽으로 열리고, 뒤쪽은 주차장과 큰 홀 쪽으로도 열어 두었다. 회의에서 건축주는 카페 뒤편에 또 다른 공간이 나오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1층 평면. 가운데 위아래로 뚫린 큰 홀 곁에 넓은 홀과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그 둘레에 아치 모양 방들로 된 카페, 빵집, 상점, 사무실이 놓여 있다. 위쪽으로는 둥글게 돌아 오르는 주차 경사로와 기계식 주차장이, 아래쪽에는 정원이 있다


1층 카페 입구. 벽돌 벽에 깊게 들어간 입구 위로 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 아치 문이 있다. 그 앞으로 넓은 돌계단과 난간이 풀밭 사이로 내려온다. 계단 양옆에 가는 나무들이 서 있다

니트를 입은 벽돌
큰 건물에 기둥이 줄지어 서면, 거대함은 필연적으로 딱딱하고 권위적인 얼굴을 만든다. 컨셉의 첫 줄은 이것이었다. 비인간적이고 거대하고 권위적인 건물, 큰 덩어리와 열주. 차가운 건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건물에 니트를 입혔다.

19세기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는 벽의 기원을 돌이 아니라 엮어 짠 직물에서 찾았다. 사람이 처음 공간을 나눈 것은 나뭇가지와 풀을 엮은 울타리와 깔개였고, 단단한 벽은 그 옷을 받치는 뼈대라는 것이다. 독일어에서 벽(Wand)과 옷(Gewand)이 한 뿌리라는 것도 그의 근거였다. 건물에 니트를 입힌다는 우리 생각은 그 오래된 이론을 문자 그대로 따른 셈이다.

니트는 신축성이 있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색과 질감과 깊이가 겹겹이고, 실을 한 코씩 떠서 쌓은 시간이 무늬가 된다. 어부의 아내들은 바다에 나간 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스웨터에 무늬를 떴다고 한다. 무늬에는 마음이 담긴다. 우리 옛 담에도 그런 무늬가 있다.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은 벽돌 사이에 꽃과 글자 무늬를 넣어, 그 집에 사는 이의 오랜 삶을 빌었다.

벽돌도 니트처럼 시간이 쌓인 재료다. 고전적이고 기본적인 재료이고, 따뜻하고 세월의 깊이가 있다. 한 장 한 장은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고, 한 장에서 벽, 벽에서 덩어리에 이르기까지 디테일이 달라진다. 큰 덩어리에 벽돌로 무늬를 뜨면 박력 있으면서도 자잘한 변주가 생긴다. 니트를 입은 건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아늑함과, 자리마다 새로운 여정이 생긴다.

진지한 것 같은데 웃긴
우리는 이 건물에 세 시대의 표정을 함께 넣고 싶었다. 클래식한 우아함, 유아적인 도형의 순수함, 현대적인 반듯함.

무늬의 재료로는 가장 단순한 도형을 골랐다. 사각형, 삼각형, 큐브, 그리고 지붕이 뾰족한 집. 아이가 크레파스로 처음 그리는 그 모양들이다.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유치원을 만들며 아이들 손에 쥐여 준 나무 블록도 공과 큐브와 원기둥 같은 단순한 도형이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어릴 적 가지고 논 그 블록의 감각이 평생 손끝에 남았다고 회고했다. 단순한 도형은 누구에게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알도 로시는 『도시의 건축』에서 도시를 기억이 쌓인 곳으로 읽고, 시대를 건너 되풀이되는 집의 기본 형태, 곧 유형을 그 기억의 그릇으로 보았다. 그의 드로잉에는 원뿔과 큐브와 삼각 지붕의 집이 아이의 장난감처럼 놓여 있다. 우리 컨셉에도 같은 말이 있다. 오래 익숙한 큐브, 사각, 삼각, 집의 기억을 찾아가는 요소. 옛것과 어린 시절을 간직하는 형태. 그 도형들이 모이면 작은 집들의 모임, 친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된다. 동네 문방구와 등하굣길의 기억을 담으려는 건물에 어울리는 무늬였다.

2020년 11월의 첫 니트-벽돌 안은 붉은 벽돌 위에 그 도형으로 무늬를 떴다. 세로로 긴 사각 창 사이사이에 끝이 뾰족한 삼각형 창이 줄을 섰다.


첫 니트-벽돌 안(2020-11). 붉은 벽돌로 쌓은 두 덩어리에 세로로 긴 사각 창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사이와 1층에 끝이 뾰족한 삼각형 창이 이어진다. 가운데 흰 계단탑 꼭대기에는 이때부터 둥근 지붕 셋이 얹혀 있다

우리가 바란 것은 고전적인 언어로 진중하게 웃기는 건물이었다. 존 서머슨이 '고전 건축의 언어'라 부른 열주와 아치와 코니스의 문법을 빌려 근엄하게 서 있다가, 다가가면 아이 그림 같은 도형이 장난을 건다. 찰스 젱크스는 전문가에게 하는 말과 대중에게 하는 말을 한 건물에 함께 쓰는 것을 '이중 코드'라 불렀다. 더 벙커의 이중 코드는 진지함과 웃음이다. 멋있는 것 같은데 귀엽고, 진지한 것 같은데 웃기고, 거대한 것 같은데 상세하다. 볼수록 매력적인 건물. 다만 둘 사이에는 균형이 필요했다.

그 웃음이 가장 또렷한 곳이 계단탑 꼭대기다. 우리는 거기에 식빵 세 덩이를 얹었다. 크고 진지한 벽돌 건물이 둥근 식빵 셋을 모자처럼 쓰고 있다.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하고 엉뚱하다. 건물에 넣은 유머다.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살아 있는 것 위에 기계적인 것이 덧씌워질 때 웃음이 난다고 했다. 더 벙커는 거꾸로 웃긴다. 기계처럼 되풀이되는 거대한 모듈 위에, 갓 구운 빵처럼 말랑한 것을 얹었다. 그 안에는 땅속 층의 공기를 뽑아 올리는 환기 장치가 들어간다. 쓸모는 진지하게, 생김새는 웃기게. 반복적인 일상 속의 비일상과 재미가 컨셉의 한 줄이었다. 빠른 길을 지나던 사람이 피식 웃으며 이 건물을 기억한다면, 우정의 공간으로 드는 첫 문턱은 이미 낮아진 셈이다.

무늬는 건축주와 이야기하며 한 번 더 바뀌었다. 건축주는 삼각형보다 아치를 무척 좋아했고, 우리는 삼각형 자리에 아치를 들였다. 뾰족하던 끝이 둥글어지자 건물은 한결 부드럽고 고전적인 얼굴이 되었고, 아치 창은 계단탑 위 식빵의 둥근 머리와 운을 맞추게 되었다. 아치는 고전의 언어이면서, 아이가 그리는 창문과 무지개의 모양이기도 하다. 벽돌도 붉은색에서 밝은 크림색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안은 맨 위층에 아치 창을 줄 세우고, 1층에는 아치가 이어지는 회랑을 냈다. 주차장 층은 벽돌을 엇갈려 쌓아 구멍을 뚫었다. 바람과 빛은 드나들고, 차는 보이지 않는다. 외장은 처음에 돌을 검토했지만, 하자를 보증할 수 있는 정직한 재료로 벽돌을 골랐다.


길에서 본 정면. 크림색 벽돌 건물에 층마다 세로로 긴 창과 아치 창이 섞여 줄지어 있고, 왼쪽 위에 'THE BUNKER' 글자가 있다. 1층 왼쪽 끝에는 경사로로 드는 넓은 입구가 뚫려 있고, 앞마당에 가는 나무와 바위가 놓여 있다. 오른쪽 덩어리 위층에는 큰 아치 창이 보인다


하늘에서 본 더 벙커의 다른 쪽. 계단탑 위 식빵 모양 지붕 셋과 옥상 주차장, 가운데 큰 홀이 보이고, 건물 둘레의 경사지에는 풀과 나무를 심은 정원이 있다

땅속의 정원
땅속 층은 벙커라는 이름처럼 땅의 재료로 지었다. 라운지의 벽은 나무 널 무늬가 남은 콘크리트로 둥글게 휘고, 바닥에는 자갈을 깔았다. 그 곁에 큰 바위를 두었다. 골프장의 필드와 모래 벙커를 건물 안으로 들인 셈이다. 휘어진 유리벽 너머로는 큰 홀 바닥의 정원이 있다. 땅속 두 층 아래에서 나무가 자라고, 그 위로 하늘이 열린다. 잎이 나고 물들고 지는 것을 땅속에서도 본다. 컨셉에 적은 '계절이 바뀌듯 이어지는 작은 변화'가 가장 깊은 층까지 내려온다.


땅속 라운지. 나무 널 무늬가 남은 콘크리트 벽이 둥글게 휘어 앉는 자리를 감싸고, 바닥에는 자갈이 깔려 있다. 오른쪽 휘어진 유리벽 너머로 정원의 나무와 바위가 보인다


휘어진 유리벽을 따라 난 자갈길. 왼쪽은 벽돌 벽, 오른쪽은 나무 널 무늬 콘크리트 벽이고, 유리 너머 정원에 바위와 나무가 있다. 천장 가장자리에는 검은 격자가 둘러 있다

스크린 골프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정했다. 방과 복도 사이를 유리와 둥글게 접히는 커튼으로 나눠, 호텔 방에서 가족과 골프를 치는 듯한 기분을 냈다. 복도의 큰 창으로는 큰 홀 건너편이 보인다.


스크린 골프룸 복도. 왼쪽 큰 창 너머로 큰 홀 건너편의 벽돌 벽과 창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유리와 커튼으로 나뉜 골프룸들이 이어진다. 천장은 검은 격자다


스크린 골프룸. 커튼과 나무 벽으로 둘러싼 방 안쪽에 스크린이 있고, 바닥에는 초록 잔디 매트와 타석이 놓여 있다

허가까지 간 우정의 공간
2020년 6월 의뢰를 받아 11월에 '우정의 공간'과 '니트-벽돌'로 방향을 정했고, 2021년 봄 외장을 벽돌로 정하고 이름을 '더 벙커'로 정했다. 2021년 8월 건축허가를 받았고, 10월에 실시설계를 마쳐 넘겼다. 이듬해 공사비를 줄이는 논의를 거친 뒤 사업이 바뀌었고, 더 벙커는 지어지지 않았다. 같은 땅에는 그 뒤 작은 카페와 사우나를 따로 그렸다.

지어지지 않았어도 우리에게 남은 것이 있다. 큰 건물일수록 사람이 길을 잃지 않게 가운데를 비울 것. 주차장 같은 건물에도 사람이 섞여 들어갈 자리를 먼저 낼 것. 크고 진지한 건물일수록 웃음 한 조각을 얹을 것. 그리고 건축은 결국 친구와의 대화가 오래 머물 배경을 짓는 일이라는 것.




자주 묻는 질문

Q. 더 벙커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A. 경기도 남양주 월산리의 국도변에 설계한 실내 골프 연습장입니다.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약 1만 1,500㎡ 규모로, 스크린 골프룸과 연습 타석, 라운지와 사우나, 카페와 빵집, 200대 가까운 주차를 한 건물에 담았습니다.

Q. 이 건물은 지어졌나요?
A. 아니요. 2021년 8월 건축허가를 받고 실시설계까지 마쳤지만, 사업이 바뀌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페이지의 이미지는 설계 모델로 2023년에 다시 만든 렌더와 2024년에 정리한 도면, 그리고 2020년 컨셉 단계의 렌더입니다.

Q. 왜 이름이 '더 벙커'인가요?
A. 골프장에서 벙커는 모래 구덩이이고, 일상의 말에서 벙커는 땅속의 은신처입니다. 골프 시설을 모두 땅속에 넣은 골프 연습장이라 두 뜻이 다 맞았습니다. 다만 숨으러 들어가는 땅속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러 들어가는 땅속입니다. 2021년 봄 골프 연습장과 건물의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Q. 왜 주차장을 땅 위에 두었나요?
A. 위아래를 뒤집으면 200대 가까운 주차가 한 덩어리로 모이고, 땅을 덜 파도 되며, 땅 위 주차장은 용적률에서 빠져 4층 높이 안에서 덩어리를 크게 키울 수 있습니다. 길에 면한 1층은 통째로 카페와 빵집과 가게에 쓸 수 있습니다.

Q. 땅속 골프장은 답답하지 않나요?
A. 건물 한가운데를 맨 아래층까지 크게 뚫어 하늘이 드는 큰 홀을 만들었습니다. 땅속 층의 라운지와 골프룸이 그 홀의 정원을 향해 열립니다. 또 건물을 땅에서 살짝 들어 올려 지하 1층이 반쯤 땅 위에 나오게 했습니다.

Q. '우정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A. 힐링을 '진짜 친구를 만나 추억을 쌓는 일'로 다시 읽은 이 건물의 컨셉입니다. 동네 문방구나 등하굣길처럼 남양주 사람들이 늘 드나들며 추억을 쌓는 곳이 되도록, 막다른 곳 없이 도는 길과 누구나 누리는 공용 공간, 카페와 골프의 연결, 친구들의 사진이 걸리는 벽을 두었습니다.

Q. '니트-벽돌'은 무엇인가요?
A. 크고 권위적이기 쉬운 길이 60m의 덩어리에 니트를 입히듯 벽돌로 무늬를 뜬 외장입니다. 2020년 11월의 첫 안은 붉은 벽돌에 사각형과 삼각형으로 무늬를 떴고, 건축주가 삼각형보다 아치를 무척 좋아해 삼각형을 아치로 바꿨습니다. 지금 안의 아치 창과 아치 회랑, 주차장 층의 구멍 뚫린 벽돌이 멀리서는 한 덩어리로, 가까이서는 자잘한 변주로 보입니다.

Q. 계단탑 위의 식빵 세 덩이는 무엇인가요?
A. 건물에 넣은 유머입니다. 크고 진지한 벽돌 건물이 둥근 식빵 셋을 모자처럼 쓰고 있도록 했습니다. 고전적인 언어로 진중하게 웃기는 건물, 멋있는 것 같은데 귀엽고 진지한 것 같은데 웃긴 건물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안에는 땅속 층의 공기를 뽑아 올리는 환기 장치가 들어갑니다.

Q. 같은 땅의 '월산리 카페 & 사우나'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A. 같은 땅이지만 다른 프로젝트입니다. 별의별건축사사무소는 이 땅에 먼저 더 벙커를 설계했고, 사업이 바뀐 뒤 카페와 황토 사우나를 위한 작은 건물을 따로 계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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